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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어쩌란 말이냐… 욕망,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출처 : 국민일보 기사입력 2011-10-06 18:08






 
2011년 대한민국 사회의 ‘슈퍼 갑’, 바로 루이비통, 구찌 등 명품업체다. 재벌가 딸들이 명품 매장을 유치하기 위해 이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고, 각 백화점도 치열한 모셔가기 경쟁을 펼친다.

이들 슈퍼 갑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명품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의 피조물 ‘짝퉁’이다. 1854년 탄생한 루이비통의 첫 위조품은 1896년에 발견됐고, 1908년에는 판매, 제작자가 유죄 선고를 받고 구속됐다니 짝퉁의 역사는 꽤나 깊은 셈이다. 세계관세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연간 교역량의 5∼7%가 위조 상품으로 추정된다.

명품 천국인 한국에선 짝퉁도 활개를 친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관세청 등은 국내에 돌아다니는 명품의 20%를 짝퉁으로 파악하고 있다. 명품에 기대 누추한 자신을 드러내고픈 욕망과 얄팍한 지갑 사이에서 고민하는 소시민들의 선택지인 짝퉁. 이를 둘러싼 세 가지 시선은 이렇다.

파는 자, 이모의 실물경제학

2일 밤 12시30분, 이 시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활기찬 곳. 동대문역사공원역 3번 출구부터 9, 10번 출구를 지나 4번 출구까지 이어지는 300m 거리에는 노란 천막들이 촘촘하게 늘어서 있다. 가방부터 각종 옷, 벨트와 구두, 팬티까지 몸에 걸치는 것 중에 안 파는 게 없다. 모두 명품 로고를 떡하니 박고 있다. 이곳은 동대문 짝퉁 시장이다.

40대 초반의 여성, 옆 가게의 청년들이 그를 이모라고 불렀다. 이모는 동대문에서 짝퉁 가방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이모 가게에서 10분 남짓 동안 7명이 흥정을 했고, 3명이 물건을 사갔다. 오고간 현찰은 50만원 정도. 잘 팔리느냐는 질문을 던진 건 어리석었다. “돈 되니까 팔지. 당연한 거 아냐?” 그 쉬운 것을 왜 묻느냐고 빤히 쳐다본다.

흥정하는 틈틈이 실전 경제학 강의가 펼쳐진다. “수요가 있으니까 공급이 있는 거지. 사는 사람 없으면 파는 사람도 없겠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 있고 모두가 행복해하잖아. 그만큼 효용이 좋다는 거 아니겠어?” 계속되는 장광설. “합리적인 소비가 뭐야? 원하는 물건을 싼 값에 사는 거 아닌가? 우리가 그렇게 팔잖아.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 만족해. 그러니까 외국인들도 기를 쓰고 여길 찾아오고 그러잖아.” 새벽 2시까지 문을 여는 동대문 관광안내소는 아예 청계천 인근의 짝퉁 노점상들에 둘러싸여 있다. 외국인들은 늦은 밤 짝퉁 쇼핑을 하고, 이곳에 들러 필요한 관광 정보를 얻어간다.

불법인 건 아시죠? “난 이게 왜 불법인지 모르겠어. 누굴 해치는 것도 아니고. 이걸 팔아서 누가 손해를 보는데? 진짜라고 거짓말하고 파는 것도 아니고, 사는 사람도 이게 가짜인 거 다 알아. 정당한 상거래야.” 이어지는 애국론. “진짜 명품 가방 사면 그 돈이 다 어디로 가냐? 외국 부자들 배만 불려주는 거지. 여기 물건은 대부분 국내에서 만들잖아. 이거 사는 게 국산품 애용이고 애국이지.” 짝퉁 소비가 애국이란 소리는 난생 처음 듣는다. 언변은 청산유수요, 논리는 아전인수의 극치다.

단속 걱정은 안 해요? 상표법 제93조는 상표권, 전용사용권의 침해행위를 한 자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무거운 벌이다. “단속하면 우리야 장사 접고 도망가면 되지만, 시간 내서 여기 찾아온 손님들은 화낼걸.” 절대 단속당할 일 없다는 듯 껄껄 웃는다. 상표법에는 사는 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다. 중요한 순간 짝퉁이라는게 들통 나 망신당하는 일만 없다면, 수요자가 이 거래에서 손해 볼 일은 없다.

사는 자, 수백 가지 가짜 명분들

동대문 짝퉁시장은 사람이 너무 많아 걷기가 힘들 정도다. 3일 오후 찾은 이태원의 모습도 비슷했다. 한 시장조사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 70.9%가 짝퉁 구매 경험이 있다. 시장을 가득채운 수요자들, 왜 짝퉁을 찾을까?

“싸잖아요. 진짜보다 상대적으로 싸기도 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으로도 싸요.” 동대문 밤 시장에 자주 온다는 이은지씨의 설명이다. “가방이 10만원 안팎, 셔츠가 3만∼4만원 정도예요. 어디 가서 이 돈으로 살 수 있어요? 게다가 여긴 대부분 한국산이잖아요. 요샌 웬만한 메이커들도 태그 보면 다 메이드 인 차이나인데요.” 동행도 맞장구친다. “가짜라곤 하지만 제 값어치를 해요. 짝퉁이라고 삐딱하게 볼 이유가 없다니까요.”

빠르게 변하는 유행도 이유다. 명품이라고 유행을 안 타는 게 아니다. 독특한 디자인의 가방은 유행 지나면 절대 못 들고 다닌다. 20대 후반의 여성은 “작년에 매장에서 정품을 샀는데 지금은 못 들고 다녀요. 그거 들면 유행에 뒤처진 사람이기도 하고, 지금은 돈 없어서 신상 못 사는 사람 취급 받는다니까요.” 뱁새들이 빠르게 도는 유행을 따라가려면 진짜는 절대 살 수 없다. 30대 후반 여성은 “짝퉁은 유행이 좀 지나면 부담 없이 버릴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는 “후세에 물려주고 싶어서 명품 산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이유 대는 건 너무 뻔뻔한 거 같아”라고 독설을 날렸다.

각양각색 쇼핑객 중 가족 단위도 꽤 된다. 졸린 눈의 아이를 안은 아내의 눈이 반짝거린다. 남편 이모씨는 아내가 여기서라도 사주면 좋다고 해서 같이 나왔다고 했다. “명품 사 달라고 안 조르니 오히려 고맙죠. 안 그랬음 허리가 휘어졌겠죠.”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짝퉁을 찾을까. 이른바 ‘명품 대리만족’ 심리에 대해 연세대 황상민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 사회에선 자신을 드러내선 안 된다. 하지만 어떡해서든 자신을 드러내고파 하는 게 인간이다. 그러다보니 한국 사람들은 명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고, 유독 명품을 많이 찾는다. 그런데 명품은 비싸니까 짝퉁이라는 대용품이라도 찾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짝퉁 구매자들 대부분이 최소 한두 개 정도 진짜를 갖고 있었다. 진짜가 하나쯤 있어야 짝퉁을 착용할 때도 스스로에게 당당해질 수 있기 때문이란다. 또 진짜와 가장 흡사한 짝퉁을 고를 수 있고, 진짜와 가짜를 번갈아 매면 주변에서도 의심하지 않는단다. 명품에 대한 욕망이 없다면 짝퉁은 존재할 수 없다. 합리적 소비, 유행 좇기 등등은 결국 허영심을 가리기 위한 변명일 뿐이다.

쫓는 자, 국격을 위해 단속한다

지난달 28일 충북 제천 중앙로의 한 액세서리 가게. 문 앞에 루이비통 가방 2개가 걸려있다. 모두 짝퉁이다. 특허청 상표권 특별사법경찰(특사경) 소속 수사관 2명이 가게로 들어가 신분을 밝히고 자신들이 왜 왔는지 차분히 설명했다. 주인은 없고, 동생 Y씨(23)가 가게를 보고 있다. 갑자기 들이닥친 수사관들의 단속에 놀란 얼굴은 설명을 들으면서 점차 흙빛으로 변했다.

수사관들은 가게를 뒤져 루이비통 가방 4개와 샤넬 가방 1개, 샤넬과 구찌, 페라가모 지갑과 색깔별 랄프로렌 모자를 찾아냈고 압수용 마대자루에 담았다. 짝퉁 피해액은 정품가격으로 산정한다. 이 가게에서 압수한 물건의 정가는 1000만원 이상이다.

아가씨의 언니는 최소 150만원에서 3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아가씨는 압수 물품이 못내 아까운지 “하나만 놓고 가시면 안 되느냐”고 끝까지 빌어보지만 수사관은 거절했다. 대신 단단히 다짐을 받아둔다. “저희가 최대한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절대 다시 팔지 마세요.”

현장을 떠난 수사관들의 얼굴엔 일을 끝냈다는 후련함과 안타까움이 공존한다. 노호철 수사관은 “300만원의 벌금, 많다면 많은 돈인데요. 저 돈을 마련하려고 또 짝퉁 판매에 손대는 경우가 많아요”라며 걱정했다. 업자들이 수사관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듯, 수사관들도 자신들이 적발했던 업자를 다시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날 단속은 아주 쉬운 편에 속한다. 이들은 지난 1월 엄동설한에 40일 정도 외근을 했다. 제조공장 단속을 위해 일산에서 시흥까지 숱하게 미행했다. 고생 끝에 피해 금액 32억6000만원어치에 해당하는 짝퉁 가방 3600점을 압수할 수 있었다.

짝퉁을 쫓는 이들의 고생담은 수두룩하다. 서울세관에서 가짜상품을 담당하는 조사3과 직원들은 최근 생산부터 판매 시스템을 모두 갖춘 조직을 잡으려고 무려 3달간 잠복근무를 했다. 정신수 조사팀장은 “상표법 사범은 본능적으로 미행을 의식합니다. 그래서 갑자기 유턴하고 엉뚱한 곳으로 가고 해요.” 갑자기 유턴 해버리면 그날의 미행은 그걸로 끝이다. 매일 조금씩 추적 거리를 늘리다보니 석 달이나 걸렸다.

적발된 업자들이 수사관들에게 덤벼들어 험악한 상황이 벌어질 때도 많다. 한번은 가짜 골프채 유통업자를 잡았는데 배후에 폭력조직이 개입돼 있었다. 행여 보복당할까 마음고생도 컸다. 게다가 중국으로 넘어갔던 짝퉁 제조업자들이 강화된 세관 업무 때문에 지난해부터 국내로 다시 돌아오는 추세다. 일은 점점 늘어난다.

그나저나 파는 자들, 사는 자들 모두 만족하고 있다는데 왜 단속합니까? “이건 국가 신인도, 자존심의 문제입니다.”

쫓는 자의 논리가 이어진다. 짝퉁이나 만들어 판다는 사실은 국격을 떨어뜨린다. 못 살던 시절 ‘베끼기만 잘하는 나라’로 얼마나 멸시 받았었는지를, 우리가 중국을 ‘짝퉁이나 만들어 파는 나라’라며 얼마나 조롱해왔는지 기억해보라.

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창의성, 아이디어와 기술을 지켜주는 지적재산권을 우리가 보호해줘야 다른 나라에도 이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

짝퉁과의 싸움에 드는 비용도 적지 않다. 세관, 특허청 직원들의 인건비는 기본이다. 정부는 압수한 짝퉁 가방을 전량 소각하는데 여기에도 돈이 든다. 짝퉁 티셔츠는 상표를 지운 뒤 제3세계 국가에 기부하는데 이 일을 하려면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인건비가 투입된다. 이 비용은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으로 충당된다. 탈세, 검은 돈의 지하경제 유입 등은 덤이다. ‘누가 피해를 입느냐?’고 주장하는 이모의 경제학은 틀렸다.

문제는 국가 신인도, 지적재산권 보호 등의 명분은 와 닿지 않고, 싼 값을 들여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도 이태원의 낮, 동대문의 밤은 짝퉁으로 화려하게 치장돼 있고 활발한 거래가 펼쳐진다. 그래서 쫓는 자들은 오늘도 바쁘다.

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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