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들의 겁 없는 명품 쇼핑 놀이



    ● 명품 시장 큰손으로 떠오른 20대
    ● 힙합 가수들로부터 시작된 자기 과시 놀이
    ● 수천만 원어치 명품 사 언박싱하는 ‘명품 하울’ 인기
    ● “SNS 보면 우울한 마음만 들어요”
    ● 불안한 미래가 소비 욕구 부채질

    ‘사바나’는 ‘회를 꾸는 ,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컨버전스 뉴스랩(News-Lab)입니다. ‘사바나’ 기자들은 모두 밀레니얼 세대에 속합니다. 커보니 ‘취업이 바늘구멍’이 돼버린 경제 현실을 목도했습니다. ‘우리 때만큼 노력 안 한 탓’이라는 윗세대의 ‘꼰대질’도 감내했습니다. 이제는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 삼아 윗세대가 ‘불편할 법한 이야기’를 꺼내놓으려 합니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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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가 명품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을 흔히 ‘영앤드리치(young&rich)’라고 한다.
     대학생 홍기성(22) 씨는 얼마 전 백화점에서 40만원 후반대 발렌시아가 볼캡(야구모자)을 구매했다. 
    이 볼캡은 워낙 인기 있는 모델이라 시중에 가품도 많이 나와 있다. 
    홍씨는 모자 하나 사는 데 두 달 동안 과외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조리 쏟아부었지만 후회는 없다. 

    “머리에 툭 쓰기만 하면 포인트가 되니까 옷 입기도 편하고, 스타일링을 따로 하지 않아도 돼 편해요. 주변 친구들을 봐도 지갑이나 운동화, 모자, 반지 등 명품 한두 개는 다 가지고 있어요. 싼 거 여러 개를 하느니, 하나를 사더라도 제대로 된 걸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최근 통계를 보더라도 20대의 명품 소비 증가 현상은 뚜렷하다. 
    빅데이터 컨설팅회사 롯데멤버스가 2017년부터 1년간 20대 고객들의 신용카드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대 명품 구매 건수는 2017년 3분기보다 약 7.5배 증가했다. 

    백화점뿐 아니라 명품 아웃렛에서도 20대 젊은 데이트족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올해로 10년째 경기도 소재 한 명품 아웃렛에서 근무하는 강모(34) 씨는 “최근 몇 년 새 20대 고객이 늘었다”며 “매장에서 바로 물건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미리 인터넷으로 가격을 알아보고 매장에서는 실물만 확인하고 가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힙합 씬’에서 시작된 ‘플렉스’


    20대들의 명품 소비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속도’다.
     인기 제품은 수백만 원의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입고되자마자 바로 소진된다.
     특히 한정판일 경우 물건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중고거래 사이트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원래 가격에 웃돈을 붙여 되파는 ‘리셀러’를 통해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해서다. 리셀러 물건도 금방 팔리기 때문에 제때 구매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또 놓치고 만다.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명품 구매자 2명 중 1명은 중고 거래 경험이 있다.
     개중에는 명품을 많이 소유한 것처럼 보이려고 SNS에 인증샷을 올린 뒤 이를 신속히 되팔아 또 다른 명품을 사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소비 행태는 중장년층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지금의 20대는 그 어떤 세대보다 명품 정보에 ‘빠삭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 배경에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확산 중인 ‘플렉스(Flex)’ 문화가 있다.
     플렉스란 원래 ‘구부리다’는 뜻이다.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을 구부리며 몸매를 과시하는 행위에도 ‘플렉스’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과시하다’라는 의미로 확대됐다. 
    또 힙합 세계에서도 플렉스란 단어가 자주 사용된다.
     이때는 돈과 귀중품을 과시하는 의미로 쓰인다. 래퍼들이 금목걸이를 치렁치렁 걸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주로 ‘힙합 씬(힙합 세계라는 뜻)’에서 유행하던 플렉스란 단어가 대중적으로 확산된 데는 래퍼 ‘염따’의 역할이 크다. 
    2006년 래퍼로 데뷔한 염따는 2018년 Mnet ‘쇼미더머니8’ 출연해 고가의 물건을 자랑하며 “플렉스 해버렸지 뭐야”라고 말했다.
     이것이 현재 유행 중인 플렉스 문화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염따는 유튜브를 통해 현금 4000만 원을 주고 중고 캐딜락 자동차를 구입하는 모습부터, 그 차를 타고 사고를 내자 수리비를 벌겠다며 티셔츠를 파는 모습까지 공개했다. 
    결국 염따는 3일 만에 티셔츠를 팔아 20억 원을 버는 기염을 토했고, 이를 지켜본 20대 시청자들은 그를 시기하거나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플렉스 해보라”며 티셔츠 사주기에 열을 올렸다.


    수천만 원어치 명품 소개하는 ‘하울’ 유행

    플렉스 문화의 시초라 불리는 래퍼 염따의 유튜브 채널(왼쪽). 명품 구매 후기로 유명한 유튜버 한별의 ‘명품하울’ 장면. [dingo유튜브, 한별 유튜브]

    플렉스 문화의 시초라 불리는 래퍼 염따의 유튜브 채널(왼쪽). 명품 구매 후기로 유명한 유튜버 한별의 ‘명품하울’ 장면. [dingo유튜브, 한별 유튜브]

    플렉스는 유튜브 문화와 결합돼 일종의 ‘소비놀이’로 자리 잡았다. 
    유튜브에서 ‘플렉스’로 검색하면 래퍼들이 운영하는 채널 영상과 ‘명품 하울’이란 제목의 영상이 여러 편 올라온다.
     ‘하울(haul)’이란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세게 끌어당기다, 또는 큰 짐을 수레나 차로 나르다는 의미다. 
    따라서 명품 하울은 명품을 수십 개씩 구매한 뒤 이 제품들을 품평하는 일종의 명품 ‘언박싱’이다.
     특정 브랜드나 물건명, 하울의 대상이 되는 카테고리 뒤에 ‘하울’을 붙여 ‘럭셔리 하울’ ‘화장품 하울’ ‘인터넷 쇼핑 하울’ 등과 같이 사용된다. 
    언박싱이 포장을 풀고(unbox) 제품을 작동해 보면서 장단점을 품평하는 콘텐츠라면, 하울은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다량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현재 유튜브에서는 ‘아옳이’ ‘치유 cheeu’ ‘한별Hanbyul’ 등 뷰티·패션 인플루언서들의 채널마다 명품 하울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1992년생으로 초창기 패션 유튜버인 한별이 운영하는 ‘한별Hanbyul’ 채널은 2019년 12월 기준 약 84만 명이 구독하고 있다.
     그녀의 명품 하울 영상 중 ‘2810만원 쇼핑하기~!! 명품하울! 같이 뜯어요’라는 제목의 영상에는 무려 3700여 개의 댓글이 달려 있다.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지갑 사려고 영상 보러 왔어요. 실제로 보니 더 예쁘네요” “대리만족하고 갑니다”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브 가치를 알고 인정할 줄 아는 분. 영상 보고 명품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등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물론 “명품 하울하는 이유가? 돈 많다고 자랑하는 건가?” 하는 악플도 있지만 그 뒤에는 “쉽게 사지 못하는 명품을 제대로 소개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장단점을 알 수 있겠나” “부자가 돈을 써야 경제가 나아진다” 등 명품 하울을 옹호하는 댓글이 더 많이 달려 있다. 

    온라인 세상에서는 어떤 게 광고이고, 어떤 게 정보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보니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사서 남기는 후기)’의 신뢰도는 더욱 올라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관련 콘텐츠를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는 전문가급 인플루언서가 많아지면서 20대의 명품 하울 의존도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1990년대생들은 명품 정보를 얻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유튜브 사이트를 찾는다. 
    유튜브에는 상품 소개를 넘어 ‘강남에 있는 명품 중고매장 털고 왔습니다! 과연 얼마나 저렴할지?’ ‘샤넬 유럽 한국 가격비교’ ‘구찌 짝퉁을 사보았습니다’ 등 참신한 정보가 가득하다.
     유명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의 슈스스TV 채널 중 ‘명품백 입문자 모두 모여라’의 경우 11개월 만에 307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애초에 플렉스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기꺼이 돈을 더 지불하는 ‘가심비’에서 출발했다. 
    가심비만 충족해준다면 20대는 플렉스의 대상을 명품에 한정 짓지 않는다.
     요즘은 새로 구매한 명품 세팅컷부터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 먹는 모습, 좋아하는 과자를 잔뜩 쟁여놓은 서랍 사진 등을 SNS에 올리고 “오늘 플렉스했어요~”라고 자랑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 김모(25) 씨는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하는 플렉스는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며 “친구들의 SNS를 보면 ‘오늘의 플렉스’ 같은 게시물이 많이 올라와 있다.
     나의 최근 플렉스는 에어팟을 장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플렉스 소비는 인증샷을 올릴 때 비로소 마무리된다.
     ‘#데일리’ ‘#플렉스’, ‘#플렉스했지 뭐야’ 등을 해시태그한 게시물 중에는 연예인 화보 저리가라 수준의 사진들도 눈에 띈다. 
    명품 업계는 이런 흐름을 반영해 20대 눈높이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디자이너 교체 후 날개를 단 구찌, 스트리트 패션의 전유물이던 어글리 슈즈를 선보인 발렌시아가 등을 필두로 브랜드마다 상품과 매장 기획이 젊어지고 있다. 마케팅 방식도 바뀌었다.
     아이돌 스타를 내세워 이미지 메이킹에 나섰다. 아이돌 그룹 위너의 멤버 송민호가 파리 루이비통 맨즈 컬렉션 쇼에 선 모습은 해당 브랜드 공식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소비로 마음 달래려는 청년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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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20대에서 늘고 있는 명품 소비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양산하기도 한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저서 ‘생각연구소’를 통해 “한 컷 한 컷 화보 같은 그들의 ‘슈퍼 인싸’스러운 사진과 해시태그들을 감상하다 보면 나도 그들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모방 욕구가 피어오른다”며 “문제는 이런 순수한 부러움이 나도 다른 사람에게 멋지게 보이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와 결합됐을 때”라고 지적한다.
     누군가의 일상을 부러워만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나만의 행복을 놓칠 수 있다는 얘기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전현정(24) 씨는 “플렉스 관련 영상이나 사진을 볼 때마다 부럽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단 생각에 슬퍼진다.
     안 보면 그만인데 호기심에 자꾸만 보게 되고 보고 나면 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3년차 이모(28) 씨는 급기야 인스타그램에서 친구 2명에 대한 팔로우를 취소(언팔)했다. 
    이씨는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회사를 관둘까 말까 고민 중인데, 날마다 좋은 데로 여행 다니고 비싼 물건을 사는 친구들의 사진을 보니 내 자신이 더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며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언팔을 택했다”고 말했다. 

    SNS가 안겨주는 상대적 박탈감에 ‘카페인’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카페인은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로 습관처럼 타인의 SNS 게시글을 읽으면서 우울함을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그럼에도 플렉스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BS ‘다큐프라임’의 ‘자본주의’ 편에 출연한 펀햄 런던대 교수는 “인간은 불안할 때와 우울할 때, 화가 날 때 소비를 한다”고 지적하며 “장기불황이 어이지는 상황에서 지금의 20대들은 어떻게든 소비를 통해 마음을 달래려 한다”고 분석한다. 이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보다 현재를 즐기겠다’는 욜로(YOLO) 문화와도 맞닿는다. 

    새내기 은행원 김모(26) 씨는 자칭타칭 욜로족이다. 김씨는 “어차피 지금 월급으론 10년 꼬박 모아도 서울에서 집을 사기 힘들다. 학자금 대출받은 것도 있고 빚은 그냥 평생 함께 가는 것”이라며 “하고 싶은 거 하고, 사고 싶은 거 다 사면서 현재를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명품 소비층이 10대로 점점 낮아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부 학교에서는 명품을 착용하고 다니는 학생이 많아지면서 도난 사고가 빈발해 교실 안에 CCTV를 설치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부산의 한 여고 담임교사는 “요즘 옷이나 가방, 운동화 등 중저가 명품 한두 개쯤 안 가진 아이들이 없다”며 “한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등골브레이커’가 요즘에는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출처  :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9418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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