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노 루이비통 회장…M&A로 '명품제국'을 세우다
    작성일 : 2018-10-25






    lobal CEO & Issue focus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 회장

    패션과 담 쌓고 살던 佛 엘리트
    35세 때 디오르 인수하며 눈 떠

    경영수업 받다 돌연 미국행
    부동산 일 하다 디오르 인수
    2년 만에 흑자로 돌려놔 

    M&A로 명품 브랜드 '수집'
    패션·시계·보석·화장품까지
    70여개 명품 브랜드 거느려
    "디자이너에 모든 권한 주자"
    마크 제이콥스 등 능력 꽃 피워 

    수공업으로 "완벽에 가까운 품질"
    와인 브랜드 샤토디켐, 그해 품질 마음에 안들면 생산 중단

    "꿈을 판다" 마케팅 적중 
    중산층도 명품에 대한 열망 갖게
    中 등 신흥국 적극 진출…온라인 강화
    세계 4위 부호지만 매주 매장 찾아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69)은 매주 프랑스 파리의 매장을 찾는다. 명품업계에 뛰어든 지 30여 년 만에 세계 4위 부호가 됐지만 회장실에서 서류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현장에서 직원들을 만나고 소비자를 관찰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기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LVMH그룹은 루이비통 디오르 지방시 같은 패션 브랜드와 불가리 태그호이어 등 시계·보석 브랜드, 모에샹동 돔페리뇽 등 주류 브랜드까지 70여 개 브랜드를 거느린 ‘명품 제국’으로 불린다. 매출 규모와 영향력 등에서 구찌, 이브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브랜드를 보유한 케링과 카르티에, 몽블랑 등으로 유명한 리치몬트를 크게 앞선다. 아르노 회장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성공 비결을 △창의성 △품질 △기업가정신 △장기 비전 등 네 가지로 꼽았다.

    손 대는 회사마다 ‘대박’

    아르노의 명품제국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게 아니라 브랜드를 하나하나 인수합병(M&A)해 이룬 것이다. 아르노는 1949년 프랑스 북부 소도시 루베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최고 명문대인 에콜폴리테크니크를 거쳐 고급 관료의 산실인 국립행정학교(ENA)를 나온 그는 패션사업과 인연이 없었다.

    졸업 후 아버지의 엔지니어링회사에서 경영 수업을 받던 아르노는 1981년 돌연 미국행을 결심했다. 미국에서 부동산사업을 하던 아르노는 35세 때인 1984년 경영난에 빠진 크리스찬디오르를 본 뒤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프랑스로 돌아왔다. 부진한 사업을 정리하고 대대적인 감원을 해 2년 만에 회사를 흑자로 돌려놨다.

    1990년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LVMH를 차지하면서 그룹의 뼈대를 완성했다. LVMH가 내부 분쟁에 휩싸인 틈을 이용했다. 주류업체 모에헤네시와 패션·명품업체 루이비통의 합병으로 1987년 설립된 LVMH는 모에헤네시 출신 알랭 슈발리에 회장과 루이비통 출신 앙리 라카미에 부회장의 갈등으로 크게 흔들렸다. 아르노는 라카미에 부회장과 손잡고 지분을 매입해 슈발리에 회장을 몰아냈다. 이후 아르노는 지분을 더 늘린 뒤 법정 공방 끝에 라카미에까지 쫓아내고 회사를 손에 넣었다.

    아르노 회장은 LVMH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뒤 주요 명품 브랜드를 인수하는 데 집중했다. 탄탄한 자금력으로 겐조, 지방시, 마크제이콥스, 쇼메, 펜디, 태그호이어, 불가리 등을 잇달아 계열사로 편입했다. 면세점 체인 DFS와 미용·화장품 유통 체인 세포라도 1990년대 후반 인수했다.

    이들 명품 브랜드는 LVMH그룹에 합류한 뒤 더 성장했다.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유통과 마케팅 외에는 최대한 경영 자율성도 보장했다. 아르노는 “중앙집권 방식은 기업가정신을 파괴한다”며 회사마다 최적임자가 경영을 맡아 책임지도록 했다. 그룹 경영진은 브랜드 책임자들과 전략을 세우고 투자를 결정하는 데 집중했다. LVMH그룹은 M&A로 인수한 브랜드를 키워 명품업계의 확고한 선두가 됐다.

     

     

     

     

     

    아르노 회장의 인재 활용 전략은 LVMH가 명품업계를 장악한 가장 핵심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그는 “훌륭한 재능을 지닌 인재를 모으는 것이 기업의 생사를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아르노는 디자이너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개별 디자이너의 예술성과 창의성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그는 다수결보다는 디자이너 개인의 직관과 소신을 중시해 재료 구매, 생산, 광고 콘셉트, 모델 분장 등 모든 권한을 디자이너에게 부여했다.

    아르노 회장의 지원 아래 루이비통의 마크 제이콥스, 지방시의 알렉산더 매퀸, 디오르의 존 갈리아노, 셀린느의 마이클 코어스, 펜디의 카를 라거펠트 등 쟁쟁한 디자이너들이 LVMH그룹에서 꽃을 피웠다. 아르노 회장은 존 갈리아노가 2000년 봄시즌 패션쇼에서 신문지로 만든 드레스를 선보인 뒤 언론의 혹평을 받자 “창조성은 쇼킹에서 나온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생산량을 늘리면서도 명품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것도 아르노 회장의 성공 비결이다. LVMH그룹에서 매출 비중이 가장 큰 루이비통은 철저히 교육된 직원들이 수공업으로 제품을 생산한다. 아르노는 루이비통의 성공 요인을 “완벽에 가까운 품질을 지속적으로 선보인 것”이라고 자부한다. LVMH그룹의 최고급 와인 브랜드 샤토디켐은 수확된 포도의 품질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그해는 와인을 제조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꿈을 파는 마케팅으로 신흥시장 공략




    명품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중산층이 고가의 브랜드에 접근하도록 한 마케팅 전략도 핵심 성공 비결이다. 소비자의 신분 상승 욕구를 자극해 명품을 대중화한 아르노 회장의 마케팅 전략은 경영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그는 마케팅 전략을 설명할 때 ‘꿈을 판다’고 표현한다.

    고급스러운 매장 건물 외관과 인테리어 연출에도 공을 들였다. 건축 디자인 거장인 피터 마리노와 손잡고 크리스찬디오르, 루이비통 등의 매장을 최대한 화려하게 꾸몄다. 소비자의 환상을 자극하는 매장 디자인은 매출 확대로 이어졌다.

    최근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 시장의 매출 증가가 두드러지고 있다. 올해 1분기 LVMH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 비중이 패션·가죽 제품 29%, 향수·화장품은 30%에 달했다. 신흥국 시장의 팽창으로 LVMH그룹은 거침없이 성장하고 있다. 올 상반기엔 작년 동기보다 12% 늘어난 218억유로(약 29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아르노 회장은 그동안 소극적이던 온라인 판매도 강화하고 있다. 작년 셀린느 핸드백과 신발 브랜드 벨루티의 온라인 사이트와 함께 그룹 최대 브랜드인 루이비통의 첫 중국 온라인 쇼핑 사이트를 개설했다. 아르노 회장은 최근엔 세계의 유망한 비상장 중소·벤처기업을 인수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LVMH그룹의 사모펀드 엘캐터턴을 통해 국내 YG엔터테인먼트와 색조화장품 전문기업 클리오 등에도 투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